"신형 전기차는 쏘나타급 차체인데, 내부 공간은 펠리세이드보다 더 나옵니다. 운전자와 탑승객의 편의성이 획기적으로 좋아질 겁니다."
현대자동차(005380)가 내년에 출시할 SUV(스포츠유틸리티차) 형태의 전기차 ‘아이오닉5’의 특징에 대해 한 관계자는 이 같이 말했다. 아이오닉5는 현대차의 전동화차량(전기차·수소차 등 전기로 움직이는 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제작된 첫 차량이다. 전동화 차량 플랫폼의 가장 큰 특징으로 ‘공간’을 꼽은 것이다. 동일 크기의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월등하게 내부 용적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탑승객의 편의성이 증대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설과 기기를 갖출 수 있다는 얘기다.
현대차를 비롯해 GM(제너럴모터스), 폴크스바겐 등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2021년부터 전용 플랫폼을 이용한 전기차를 내놓기 시작하면서, 전기차발(發) 모빌리티 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단순히 동력원이 배터리로 바뀌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자동차’를 구성하던 주요 부품들이 사라지거나 바뀌면서 디자인이나 내부 공간 구조, 편의기기 탑재 등에서 큰 폭의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차량에 탑재하는 대용량 배터리와 고성능 컴퓨터를 기반으로 영화관을 방불케 하는 엔터테인먼트나, 이동식 사무실로도 손색없는 업무 수행 기능을 제공할 것이란 전망이다.
◇엔진·변속기 사라지고 소형 파워트레인 2개만 남아
현대차의 아이오닉5, GM 산하 고급차 브랜드 캐딜락이 이달 초 공개한 리릭(Lyriq) 등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사용한 차의 가장 큰 특징은 바퀴 중심축과 차량의 앞뒤 끝 사이 거리인 오버행이 내연기관차와 비교해서 많이 짧다는 것이다. 탑승자가 실제로 쓰는 공간과 연관이 깊은 휠베이스(축거·앞뒤 바퀴 축 사이 거리)는 외관 크기로 분류되는 ‘체급’을 한두 단계 뛰어넘는 수준으로 크다. 엔진이 사라지고, 모터·감속기·인버터가 일체화된 파워트레인이 앞뒤 바퀴 중심에 각각 탑재되기 때문이다.
아이오닉5는 차체 길이인 전장(4635mm)만 놓고 보면 쏘나타(4900m), 아반떼(4650mm)보다 짧다. 하지만 전폭(1890mm)는 쏘나타(1860mm)보다 넓고 싼타페(1900mm)에 근접한다. SUV이지만 좀 더 납작해 세단 느낌이 나도록 전고(1605mm)는 코나(1565mm)보다 약간 높은 정도로 설계됐다. 이 정도면 차체 크기는 쏘나타급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휠베이스는 3000mm로 펠리세이드(2900mm)을 앞서고, 쏘나타(2840mm)나 싼타페(2765mm)를 능가한다.
이 같은 특징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쓰는 차량의 공통점이다. 테슬라의 모델3는 크기는 쏘나타급이지만 내부 공간은 그랜저급이다. 모델3의 전장은 4694mm로 쏘나타(4900mm)보다 200mm 이상 짧고, 아반떼(4650mm)보다 약간 길다. 그런데 휠베이스는 2875mm로 쏘나타(2840mm)보다 오히려 그랜저(2885mm)에 가깝다. 전폭(1849mm), 전고(1443mm)는 쏘나타와 비슷하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사용하는 차량은 엔진 역할을 하는 모터, 변속기 역할을 하는 감속기, 배터리에서 나온 직류(DC) 전기를 모터 구동을 위한 교류(AC)로 바꿔주고 전력량도 조절하는 인버터 등 핵심 파워트레인을 일체형으로 만들어 앞바퀴 중심과 뒷바퀴 중심에 하나씩 탑재한다. 전기차 기술이 발전하면서 파워트레인의 경량화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독일 자동차 부품회사 컨티넨탈이 2019년 7월 상용화한 전기차용 파워트레인은 1개 무게가 80kg 미만이다. 군터 뮐베르그 컨티넨탈 전기차구동플랫폼 개발팀장은 "2015년 당시 파워트레인과 비교해 중량은 20% 가벼워지고, 단가는 30%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컨티넨탈제 파워트레인은 최대 출력이 120~150kW인데, 마력으로 환산하면 175~203마력(ps)에 달한다. 총 160kg 중량의 파워트레인으로 400마력이 넘는 출력을 낼 수 있는 셈이다. 쏘나타에 탑재되는 쎄타엔진은 134kg이고, 일반적인 변속기 중량이 90~100kg에 달한다.
◇고성능 컴퓨터·대형 스크린 탑재한다
전기차는 단순히 차량 내부 공간만 커지지 않는다. 고성능 컴퓨터, 대형 디스플레이와 고품질 음향 기기, 의류관리기·커피머신·냉장고 등 다양한 가전기기들이 차량 내부에 탑재된다. 내연기관차와 비교해 진동이나 소음도 작다. 바퀴 달린 사무실이나 달리는 영화관처럼 차량을 바꿀 수 있는 이유다.
LG그룹이 개발하고 있는 미래형 전장부품은 이러한 전기차의 발전방향을 잘 보여준다. LG(003550)는 서울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에서 컨셉트카 형태로 자사가 개발하고 있는 다양한 기술과 제품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박스카 형태의 차량이 한 대 전시되어 있는데, 안에는 차량 뒷좌석 부분 유리창을 완전히 덮는 크기의 고화질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다. 탑승자가 ‘하이, LG’라고 말하면 스크린이 내려와 작동을 한다. 탑승자들이 앉는 의자는 자동차와 다르게 극장 좌석처럼 높이가 상당하다. 그리고 팔걸이 앞 쪽 부분에는 스크린 조작을 위한 터치스크린 패널이 플렉서블 OLED로 탑재된다.
좌석 사이 공간은 스타일러, 냉장고 등이 숨어있다. 전기차는 차량에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하기 때문에, 다양한 생활가전 기기를 설치할 수 있다. 지난 2019년 현대차는 차량 구매자의 니즈에 맞춰 내부를 개조할 수 있는 ‘스타일 셋 프리(Style set free)’를 공개했다. 이 서비스는 좌석 위치와 개수를 조정할 수 있고, 소형가전 및 사무기기 등을 차량에 넣을 수도 있다.
이러한 기능을 제어하는 기능을 맡는 것은 차량에 탑재된 고성능 컴퓨터다. 5G(5세대) 이동통신망을 통해 차량과 운전자의 스마트폰 및 주택에 설치된 다양한 IT기기와 데이터를 주고 받는 역할도 차량 내 컴퓨터가 맡는다. 테슬라는 영상 인식 기반의 자율주행 기능을 위해 차량 안에 자체 제작한 고성능 컴퓨터를 탑재하고 있다. 머신러닝에 최적화된 전용 중앙처리장치(CPU)가 특징이다. 테슬라 차량이 IT기기처럼 조작이 이뤄지는 것은 이 컴퓨터 덕분이다. 미래의 전기차도 이와 비슷하게 고성능 ‘두뇌’를 탑재하게 될 거라는 게 자동차 업계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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